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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군 입암면 ‘왕심마을’ 역사의 유래

“내장산과 백양사의 중간에 위치한 명당자리”

기사입력 2021-10-25 오전 9:43:2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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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군 입암면 ‘왕심마을’ 역사의 유래

“내장산과 백양사의 중간에 위치한 명당자리”

 

 

정읍시 상공의 항공에서 내려다 본 입암면 왕심마을의 빼어난 전경은 중국과 일본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내장산과 백양사의 중간에 위치한 지형의 명당자리가 지리적으로 좋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입암면 갓바위(해발 632m)에서 내려다 본 왕심마을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는 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의 지세와 위용을 지닌 비룡산아래 자리 잡고 있는 명당의 장소에는 순흥안씨, 광산김씨, 청주한씨 3개의 집성촌으로 이루어져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으로 왕심마을이 형성된 이래로 홍수피해가 한 번도 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지형과 지세를 이루고 있는 명당마을 중에 서도 좋은 공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살기 좋은 왕심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역참제도에 의한 󰡐왕심원󰡑 이 형성되어 살았다고 하여 왕심마을로 지명이 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지난 과거의 옛 국도 1호선이 마을 앞으로 지나가고 있고 마을 뒤에는 비룡산과 매봉산이 마을 중심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증산도가 일어나던 같은 시대에 혼란으로 조선왕조가 흔들리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가던 시대에 동학운동이 있었으니 기해농민 봉기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마을 입구에서 농학농민들이 집결하여 동학운동의 도화선이 된 장소이기도 하다.

 

호남고속도로 확장공사를 통에 그동안 땅속에 묻혀버린 비를 2020. 05. 27. 발굴하던 당시 당일 날에 󰡐안길만󰡑 󰡒정읍시 문화분과위원장󰡓이 문화유산의 역사적인 자료의 모니터링 과정에서 세밀하고 정밀한 추적을 통해 발굴하여 기념비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순흥안씨가 인천광역시 󰡒다소면󰡓 면내의 소재지에서 거주하고 있던 마을에서 태어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소재지 면내의 󰡒흥덕󰡓을 거쳐서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소재지 면내의 왕심마을로 연결되는 도로를 경유(이용)하여 찾아오신 극 선조께서는 1700년도 경신년(庚辰年)에 출생(出生)했다.

 

 

 

18세 나이에 전염병으로 전 가족을 잃고 전라도 흥덕현감인 외숙 댁으로 찾아와서 학문에 열중(집중)하던 도중에 다시 전북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 군위오씨의 명가로 혼인하여 아들(성명 : 기제)을 낳고 산후증상으로 별세하고 나서는 정읍군 입암면 왕심리(흥덕현 서일면 성신리)에 거주하고 있는 광산김씨 집안으로 다시 재혼으로 이주하여 육형제를 두었으며, 1758년도에 58세 나이로 별세하고 연자봉(󰡒대흥리󰡓 마을 뒤에 위치하고 있는 산)에 안장이 되었다.

 

이후 5대조인 가선대부 󰡐휘 영호󰡑께서 선친과 함께 인천 선영을 관리하여 왔으며, 1899년에 피난동(대흥리 뒷산)의 󰡒제실을 건립󰡓하였고 1913년에는 일제치하에 토지소유권 이전 관련된 측량과 사실조사를 하던 중에 󰡐휘 영호󰡑께서 인천광역시 소재에 위치하고 있는 문중의 선산을 우리 문중 재산으로 소유권을 이전 했다.

 

이어 종손이신 승인(承仁)선조께서 1938년 인천광역시 소재에 위치하고 있었던 󰡒가문의 선산󰡓이 인천부 확장지역으로 편입(현 인천 자유공원터) 토지보상(60만원, 현재 실거래 시가의 환산금액 74억 5천만 원)을 받아서 탑동에 제각을 건립하고 왕심리 뒷산 등에 전. (田. 㙮)을 매입하고 자유공원에 계신 선조님들을 왕심마을로 이장하게 되었다.

 

살기 좋은 우리 동네 자랑스러운 왕심마을은 1910년경에는 일제 강점기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성신리󰡑에서 󰡐왕심마을󰡑로 개명하여 지금까지 전해져서 내려오고 있다.

 

 

 

󰡐왕심마을󰡑의 지형은 지리적으로 산새가 수려하고 빼어나서 농로와 수로의 좌우측으로 비룡산과 매봉산이 장엄하게 왕심마을은 원형으로 둘러져 쌓여 있어서 빼어난 경관과 장관이 뛰어나고 인심이 후하고 좋아서 예부터 선현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조말기에는 전라감사 󰡐이석우󰡑께서 방문하셨고 근래에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 씨께서도 왕심마을 직접 찾은 명소 마을인 곳으로도 유명하기도 하다.

 

앞으로는 국도와 호남고속도로. 철도가 넓게 펼쳐진 평야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어서 천혜요소의 지명조건이 모두가 갖추어진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후에는 현손이신 26세 가선대부 돈녕부사 휘 영자호자(󰡐휘 영호󰡑)께서는 웃어른들과 함께 인천부 다소면 화동에 위치하고 있는 선산까지 다니면서 문중의 묘역을 관리하여 오던 중 인천 선산에는 당시 고위관리의 투장 묘가 일방적으로 밀고 들어와서 달리 방법이 없자, 24세 휘 석자 열자(󰡐휘 석열󰡑)께서는 엄동설한인데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그 투장 묘를 해체하던 도중에 발각되어 삼척시 소재의 감옥으로(현재의 교도소로) 호송(포송)되자 󰡐공󰡑께서는 우리 문중 묘의 당위성을 계속 주장하여 무사히 해결하셨으니 󰡐공󰡑의 위선일념의 상무의 󰡐효󰡑정신을 높게 모두가 받아들여서 선열의 우국정신의 󰡐효󰡑사상 실천을 본받아야 될 것이다.

 

이후 󰡐위 영호󰡑 영자 호자 (안영호)선조󰡑께서는 1899년 기해년에 피난동 안가에 제실 영모 제를 건립하시고 1905년도 󰡒을사 해󰡓에 27세 휘 승자 용자님의 󰡐안승용󰡑 배위이신 의성김씨 할머님의 열행이 뛰어나 국가에서 정려를 하사하여 정읍시 입암면 단곡리 142번지에 󰡒정려 각을 건립󰡓하셨다.

 

 

 

그 후로 20년 뒤의 해인 1909년 12월 2일 노환으로 별세하시니 문사 일은 26세 휘 연자 호자(󰡐안연호󰡑)께서 이어 받으셨다.

 

1910년~1915년까지 일제가 전국의 토지조사를 실시하자 휘 연자 호자(󰡐안연호󰡑)께서는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인천선산을 문중의 소유로 확정했다.

 

승자 인자(󰡐안승인󰡑)께서 종손으로 양자로 입양 가서 1938년 인천선산 보상금 60만원을 수령하였으며, 1940년도 경진에 인천선산이 인천부 확장으로 현 자유공원에 편입되어 부득이, 인천 선산에 계시는 휘 극자 선조(안극조)증조 휘 승자 화자(안승화), 휘 인자 일자(안일자), 위 홍자 민자(안홍민), 맏형 휘 구자(안휘구), 작은형 리자 오위분(안리오)을 정읍시 입암면 지선리 탑동 선산에 설단이장하고 성신제와 사적비를 세웠다.

 

이후에도 함께 동조하고 애쓰신 종원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영호(英鎬(26세)), 련호(練鎬(26세)), 승우(承禹), 승갑(承甲(27세)) 등과 합심하여 문중 일을 함께하여 공덕비를 설치하게 되었으며, 후손들은 위 분들의 업적과 우리 왕심부락은 휘 현자 록자(안현록) 자손들은 숭조목족을 가훈으로 물려받은 조상님의 유지를 받들어 명문대가로 길이길이 이어나가고 있다.

 

종손으로서 누구보다도 종사 일에 성심(誠心) 성의(誠意)를 다하신 분이므로 문중에서 비석(碑石)을 세워 고인의 뜻을 기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① 가정생활이 타의 모범(模範)이 되고 애국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후손들에게 귀감(龜鑑)이 되었다.

 

- 단발령 시 고유의 전통과 일제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나라 일을 걱정하여 단발을 하지 않고 버티다 낮잠을 자는 사이 입암지서 순사(巡査)가 와서 머리를 강제(强制)로 잘라 버린 사례도 있었다.

 

② 왕심마을 주민을 위한 마음 : 지금 산소(山所) 옆 탑동 선산 가는 길에 무우 밭을 심을 때는 길옆 한도랑은 똥거름을 하지 못하게 하여 지나는 나무꾼이나 마을사람들이 무를 뽑아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도록 배려(配慮)가 필요하다.

 

③ 농사일에 충실(充實)하여 정읍군수로부터 다수확(多收穫)상 수상한바 있어 농부(農夫)로서의 근면. 성실함을 보여주고 있다.

 

④ 문사 일에 성심 성의껏 추진 : 양자로 입양 가서 문중의 종손(宗孫)으로서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피난골. 줄포. 순흥, 상주 등의 시제에 참석 및 준비하고 위선지도(爲先之道)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여 지금 탑동 제각의 선조들과 비문 설치 등 적극적으로 문중 일에 참여하고 있다.

 

⑤ 이성녀(李性女) 조모님이 큰아들 쾌남(15세), 둘째 수영(11세), 셋째 항영(9세), 넷째 용남(5세)인 자녀들을 후손으로 남기고 갑작스런 별세로 오묘순(吳妙順) 조모님 이 안문(安門)에 들어와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근검(勤儉). 절약(節約) 생활로 11남매를 가르치고 문중의 종부(宗婦)로서 문사 일에도 남다른 성의로 적극 임하여 집안 어른들로부터 칭송(稱頌)이 자자하였다.

 

 

 

타의 모범과 귀감(龜鑑)이 되었으며 종부(宗婦)로서의 위엄(威嚴)과 자태(姿態)가 흩뜨려지지 않고 살아왔으며, 98세(歲)의 나이로 지체(肢體) 장애자(障碍者) 1급인 오남 아들을 남겨두고 한평생을 안타까워하다 세상(世上)을 등지게 되었다.

 

⑥ 애경사 있을 때 마다 그때 시절 만해도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는 거지들이 많이 있었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분들에게도 집에 찾아오면 반드시 밥상에 음식을 정성껏 담아서 홀대하거나 흐트러짐이 없이 우리가 먹는 밥상처럼 정성을 다하여 맛있게 대접하라는 일관성 있는 배려심의 맥락이 할아버님의 지시였다.

 

⑦ 626전쟁(육이오 전쟁 당시) 인공 때 당숙이 초등학교 선생(안수영) 업력으로 근무 하고 있었을 당시였었는데, 그때 우리 집으로 피신 와서 숨겨주었는데 인민군들이 총 뿌리를 들이대며 찾아내라고 윽박지르고 발로 차이고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참아내며 당숙을 살려낸 유명한 일화가 있다.

 

지영(주정리 당숙)은 덕석으로 말아서 작은방에 세워두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었다. 고함.

 

 

 

* 그때 당시 제사지내려고 정성껏 제사음식을 장만해서 요리를 해놓으며 산속에 숨어있었던 인민군들이 밤마다 왕심마을로 내려와서 전부다 강제로 싸가지고 방장산으로 올라가는 세상이었다고 함.

 

지영(志榮 : 1918~1953. 12. 16., 석영(碩榮: 1920~1976. 06. 01.), 안승인(安承仁 (27세손))은 문중의 종손으로서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줄포, 순흥, 상주 등 문사 일을 보러 다니셨으며, 1938년 인천 다소면 도화동 선산이 인천 자유공원으로 편입됨에 따라 60만 원(2014년 시세 12억 5천만 원)의 보상금으로 선조 이장 및 탑동재실 건립, 선산 조성, 문답구입 등 순흥안문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다 돌보셨고, 종손으로서의 위엄(威嚴)과 자태(姿態)가 흐트러짐 없이 도덕적으로 헤이가 되지 않고 올바르고 정직하게 근면한 생활을 실천하면서 살다가 영면했다.

 

왕심마을의 자랑거리 인물이자 󰡐안정용󰡑은 구면농장의 대표이사로 창업해서 운영하고 있으며, 대흥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대흥초등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여 지원하고 있다.

 

매년 6학년 학생들 전원에게 해외여행을 함께 같이 동행하면서 후배들에게 큰 비전의 꿈과 학업에 도전하는 이상과 현실을 이루도록 하여 동기부여를 제공 및 유발하고 있으며, 후학들은 미래의 꿈나무로 성장하는 모멘텀 지혜의 긍지를 골고루 갖추도록 경제적 지원을 담당해오고 있다.

 

개인사비 1억 원 예산을 들여 대흥초등학교 전 학년에게 통학버스를 구입해서 지원하는 노력을 타의 모범과 귀감이 되도록 봉사정신을 적극적으로 실천을 추진하는 등 왕림마을 지역 내 사회의 후배와 주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정신의 사회정의 구현을 위하여 적극 실천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일관성 있게 담당하고 있다.

 

 

 

또한, 순흥안가 현록대종회 제실인 피난동 제실의 오랜 풍파와 세월로 오래된 안가의 건물들이 노후하고 훼손되자 이를 안타깝게 여겨서 자비로 약 3억 원을 투입하여 도로 길을 확장하고 보수하였다.

 

이것은 오로지 안문과 지역사회에 발전의 초석에 아낌없이 헌신하고 봉사하는 타의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되고 있다.

 

 

강서뉴스 안길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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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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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길해
    2021-10-25 오후 3:39:06
    대흥초 운영위원장이고 왕심문중 재무인 안정용 종원의 문중과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넘쳐나 앞으로 순흥안문과 입암면의 발전이 지속적으로 대대손손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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