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종합 > 강서뉴스

사서가 추천하는 인생 책②

박지리 작가의 <번외>

기사입력 2019-10-07 오후 8:25:54 입력
페이스북 트위터

사서가 추천하는 인생 책

박지리 작가의 <번외>

 

 

책 제목과 서평만 보고 고른 신간이 도서관에 들어오는 날은 늘 그렇듯 설렘과 짜증이 교차하는 날이다. 컴퓨터 속에서만 봤던 책 실물을 보는 기쁜 날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서로서 많은 책을 한꺼번에 서가에 배열해야 하는 고달픔을 감수 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올 봄에 들어온 많은 신간 중에 <번외>라는 청소년 소설이 눈에 띄었다.

 

 

 

책 제목이 번외라니……. 무슨 뜻일까? 도서목록을 선별할 때부터 궁금했던 터라 입고된 많은 책 중에서 제일 먼저 집어 들었다. 항상 실물 책과 책 소개는 느낌이 다르기에 입고일이 기대된다. 실제로 <번외>를 보니, 요란하지 않은 표지의 첫 인상이 무척 소박했다.

 

책제목 <번외>예정에 없는 일이란 뜻이었다. 인생이 항상 예정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인생 자체가 번외가 아닐까싶다.

 

실물 책을 보니, 청소년 소설로서 두껍지 않아 좋았다. 책날개부터 천천히 살펴 보다 작가 이름과 소개에서 잠시 멈췄다. 생소하다 못해 특이한 이름은 남성인지 여성인지조차 짐작 할 수 없음은 둘째고, 작가 소개를 보자마자 멈칫했다.

 

"문학을 배워 본 적이 없는 이 젊은 작가는...."으로 시작해서, "<번외>는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다."라고 끝맺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리 작가는 청소년 소설을 달랑 6, 단편 1개까지 겨우 7개의 작품을 남긴 체 요절한 작가였다. 겨우 31세에 요절이라니……. 너무 안타까웠다.

 

<*>라는 청소년 소설로 사계절문학상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 겨우 6년 만에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기대할 만한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더구나 그녀의 작품 중에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라는 856쪽짜리 무지 긴 장편소설을 탈고 한 뒤 8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깜짝 놀랐다.

 

박지리 작가가 여성인 줄은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찾아 읽고 나서 알았다. 정면을 응시하지 않은 옆모습 사진은 그냥 평범한 2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특이 할 게 없는 외모였다. 인터뷰에서 작가로서 어려운 점이 뭐냐는 질문에 경제적 자립이 어렵다며, 여전히 자신을 '백수'라고 표현한 게 마음에 걸렸다.

 

누구에게나 20대는 우리 생에 나이 듦은 없을 것 같고, 늙음을 상상 조차 못하는 시절이다. 그렇다고 실재로 20대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생을 마치거나 포기 하진 않는다. 살아지기 때문에 살아가는 시간을 견딘다. 그래서 '지금'이 소중한 것인데…….

 

조금 더 작가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이 젊은 작가는 아마도 스스로 생을 마감한 듯하다. 작가의 재능이 발견되고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했음에도 무엇이 작가의 생을 이렇게 재촉했던 것일까? 지병 때문에 지쳤던 것인가? 확인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은 생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 체 무딘 감성으로 살아간다. 하루하루 잊으며, 잊혀 지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젊은 작가 박지리의 시간은 늘 가시처럼 뾰족하고, 녹록치 않은 고통의 연속이었나 싶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작가의 책을 모조리 찾아 봤다. 우리 학교 도서관에는 두 종 빼고 다 있었다. 특히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란 책은 왠지 더 끌려 중고서점에서 초판본을 찾아 읽었다. 이 책은 다윈 가문의 엘리트 소년, 다윈 영이 아버지 친구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풀어가다가 결국 자기 아버지에 맞닿게 되고, 자신도 아버지처럼 죄를 짓고 기성세대로 편입해 버리는 참담한 결말이었다. 박지리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배반당한 기분이었다. '악의 기원'이란 제목은 다윈 가문의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진 악의 비밀을 암시한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설국열차'를 보는 것과 같은 배경 설정에서부터, 1구역에서 9구역까지의 특징 묘사, 그리고 사람 이름에서 느껴지듯 국적이나 인종을 알 수 없는 모호함, 마치 해리포터 마법학교 같은 서구적인 느낌, 그리고 '다윈'이라는 어휘가 주는 진화의 의미와 굴곡진 결말 등등. 아주 특이한 작품이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작년 가을에 서울예술단에 의해 뮤지컬로 만들어져서 초연을 마쳤다. 작가와는 다르게 새롭게 해석된 등장인물의 특징으로 뮤지컬이 만들어져 많은 이들이 재연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본래 소개하려던 <번외>를 벗어났으나, 박지리 작가에게 마음이 꽂혀 작품을 따라 가다보니,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란 책까지 소개하게 됐다.

 

<번외>를 인생 책으로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만약 늘 알고 지내던 지인이 어느 날 자살 했다면, 혹은 사고로 죽었다면, 살아 남아있는 ''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번외>에서는 엉뚱하게도 고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가 화자이다. 생존자가 격은 지난 1년의 정신적 트라우마는 마침내 참사 1주기 다음날, 하루 동안의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 속에 투영된다. 결말은 없다.

 

참사 1주기 다음날에 학교를 조퇴한 생존자가 길을 가며 만나는 여정에서 일반인들이 죽음을 대하는 통념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마치 자신이 죽고 난 후 남은 가족들이, 친구들이, 그녀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지인들 입에서 나올 법한 예견된 상상 같다.

 

오세란 평론가는 <번외>에서 세월호 사건 후에 감지된 사회의 여러 징후들이 떠오른다는 데, 내 생각은 다르다. 책 속 화자인 생존자의 친구K2007년에 있었던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주인공 조승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사건 후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젊은 작가 박지리를 추모하고 싶다. 그리고 살아남아서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삶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됐다.

 

 

글: 김은희(화원중학교 사서)

 

 

최근기사

네티즌 의견28
내용은 200자 이내로 적어야합니다. 기사와 무관한 글은 임의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스팸방지코드  )
의견
쓰기

  • 가을하늘색
    2019-10-09 오전 10:49:26
    마음이 아프네요.. '살아지기 때문에 살아가는 시간을 견딘다' 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푸른하늘
    2019-10-09 오전 4:42:30
    허무를 통한 희망, 어려운 주제를 던지시는 건 아닌지?
  • 수현
    2019-10-08 오후 5:21:20
    독서의 그릇을 넓일 수 있게 새로운 책 알려줘서 고마워요.
  • 성현주
    2019-10-08 오후 3:19:33
    늘 노력하시고 화이팅하시는 쌤을 응원합니다~♡
  • 신정임
    2019-10-08 오후 1:24:44
    번외, 박지리 작가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 짱아맘
    2019-10-08 오후 12:32:28
    박지리 작가 및 '번외' 작품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고 갑니다
  • 차훈희
    2019-10-08 오후 12:12:00
    학생들과 함께 꼭 읽었으면 좋겠어요
  • 나비
    2019-10-08 오후 12:07:25
    책소개 감사드립니다. 강서뉴스에서 귀한 정보들을 접하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 박성희
    2019-10-08 오후 12:05:17
    박지리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되어 좋았습니다.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 김소연
    2019-10-08 오후 12:01:00
    좋은책소개감사합니다.번외..예정에없는일..궁금해서얼른읽어봐야겠습니다.고생하셨습니다

최근 가장 많이 본 기사인물

  1. 문진국
  2. 이충숙
  3. 문병인
  4. 장준복
  5. 신현철
  6. 남점현
  7. 소재진
  8. 신낙형
  9. 조용구
  10. 류 자
  11. 한명철
  12. 이수연
  13. 김병옥
  14. 김현희
  15. 김환수
  16. 김병희
  17. 권오륜
  18. 송훈
  19. 손기서
  20. 임성택
  21. 이운희
  22. 최연근
  23. 박경숙
  24. 조남국
  25. 김광수
  26. 김병진
  27. 임복순
  28. 허유권
  29. 김은희
  30. 백운기
최근 가장 많이 본 기사인물은 독자들이 기사인물에 대한
클릭수(읽기)가 실시간으로 적용된 것입니다.

최근 가장 많이 본 기사